어떤 나라를 ‘경제대국’이라고 할 때 보통 그 국가의 전체 생산 GDP 또는 총 수출입량 또는 국민개인소득액 등을 기준으로 말한다. 또 다른 손쉬운 지표는 대표 글로벌 기업이 그 나라에 존재하는 지의 여부다.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GDP 등의 숫자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다수의 대표 글로벌기업들이 미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고 자주 말하는 데(지금은 G7을 넘보고 있다) 그 근거는 GDP 또는 교역량 등의 정량적 지표를 보통 활용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삼성, 현대차, SK, LG 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글로벌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경제강국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 성장과 나라 성장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최근 동남아 맹주로 급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베트남은 스타기업 및 기간산업 육성을 통한 나라 성장 전략을 택했다. 이는 한국형 모델을 따른 셈이다. 베트남의 전략적 육성 스타기업은 ‘빈그룹(VinGroup)’이다. 빈그룹은 베트남내 최대 민간기업이다. 그래서 ‘베트남삼성’으로 불린다. 그런데 사실 이 기업은 부동산개발 및 건설로 성장했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보면 한국의 현대차그룹(구 현대그룹)에 가깝다. 그런데 빈그룹의 야심찬 미래 사업 전략은 스마트폰(빈스마트VinSmart) 및 자동차(빈패스트VinFast)다. 결국 한국의 삼성 및 현대차의 핵심 역량을 모두 갖추겠다는 야심찬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롤 모델을 한국 대표 기업으로 삼고 이를 넘어서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실제 필자가 국내외에서 만나는 베트남 경제인들과 유학생들은 한국의 경쟁력있는 기업들을 부러워하면서 십수년내 이들 한국 기업을 따라잡겠다는 생각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베트남정부 및 대표 기업 빈그룹의 향후 전략적 행보에 관심이 간다.
빈그룹이 최근 미국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그것도 그냥 자동차가 아닌 전기차로 선진시장을 잡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야심찬 계획이다. 과연 빈그룹은 미국에서 진짜 전기차를 만들어 팔 수 있을 것인가? 빈그룹 자동차 계열사 빈패스트(VinFast)는 미국에 자동차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빈패스트가 오는 2022년까지 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빈패스트는 샌프란시스코에 직원 50명 규모의 연구소(research office)를 설립한 후 2022년 미국 판매를 목표로 전기차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블룸버그는 팜 냣 브엉(Pham Nhat Vuong) 빈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미국에서 꿈과 야망을 펼쳐낼 것"이라고 전했다.
타이 탄 하이(Thai Thanh Hai) 빈패스트 CEO는 "빈패스트의 비전은 글로벌 스마트 전기차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라며 "미국 시장은 우리가 집중할 최초의 해외시장으로 처음 내놓을 자동차는 미국을 위한 고급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빈패스트는 올해 35개의 캘리포니아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열 예정이고 미국내 판매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곧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 CEO는 그러나 전기차 공장이 위치할 지역과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이와 관련해 빈패스트(VinFast)가 애플의 최대 협력업체 대만 폭스콘과 전기차 합작생산을 논의하고 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도 최근 나왔다. 로이터는 빈패스트는 친환경차 제조업체로 브랜드화하고 전기차 사업을 원하기 때문에 파트너십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빈패스트는 실제 배터리 및 전기차 부품 개발에 협력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실제 미국 공략을 위한 행동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베트남은 자국 대표 기업을 선진 시장에 보내 정면승부를 펼치며 경제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패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야심찬 패기와는 달리 전문가들은 빈패스트의 미국 자동차 시장으로의 도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미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은 사양산업이고 전기차 및 자율주행 모빌리티 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이 시장은 베트남이 공략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이미 테슬라가 앞서가고 있는데다 포드 및 제너럴 모터스 같은 기존 대형 회사들이 전기차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전통의 자동차 강자들도 이미 수십 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아직 전기차 시장 입지를 다지지 못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이 경쟁에는 미국 기업들만 있는 게 아니다.
독일 기업인 폭스바겐, BMW, 벤츠 그리고 일본 기업인 토요타, 닛산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업들까지 이 경쟁에 보태야 한다. 또한 자동차산업 강국인 한국의 현대차 기아차도 있다. 한마디로 미래 자동차 시장 경쟁은 불꽃이 튀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자동차 회사들이 확보하고 있는 전기차 및 수소차, 자율주행 등의 기술은 베트남 빈패스트와는 격차가 상당히 크다. 빈패스트의 북미시장 입성이 쉽지 않은 명확한 이유다. 이에 대해 반패스트 하이 CEO는 "빈패스트는 높은 안전 규정과 이를 만족시키는 첨단기술을 갖춘 최고급 차량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어서 비록 낮은 인지도의 베트남 자동차 기업이지만 미국과 해외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고객 만족도는 최고를 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베트남자동차제조업협회(VAMA)에 따르면 올해 설립 3년째인 빈패스트는 지난해 자국내에서 약 3만대의 차량을 팔았다. 올해는 4만5천대 이상을 팔겠다는 계획이다. 베트남에서는 지난해 삼십만 대 가량의 자동차가 팔려 빈패스트는 결국 약 10%의 시장을 점유한 셈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한국의 현대차는 8만1천여대의 판매량을 기록해 시장 점유율 27%로 1위를 기록했다. 빈패스트는 자국내에서도 현대차에 한참 뒤지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빈패스트의 판매량 부진과 관련해 베트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빈패스트는 성능에 비해 가격이 비싸 경쟁력이 떨어지는다는 게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력 부족으로 현재 핵심 부품을 유럽 자동차 회사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어 가격을 낮추기가 쉽지 않는 구조다. 그런데 미국시장에서는 어떻게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인지 일단은 의문이 간다. 미국내에서 빈패스트는 과연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미래 가치가 많은 베트남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또 하나의 관심거리가 생겼다.
한국경제TV 글로벌 콘텐츠 유은길 선임기자
egyou@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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