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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메이커스] "예쁜 쓰레기라뇨…가심(心)비는 최고입니다"

by 한국경제TV 2020. 7. 24.

디자이너 장영진(34) 씨의 책상엔 소품점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영진 씨가 책상 한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팬더 피규어에게 '오늘 밖으로 나갈까?'라고 핸드폰 문자를 보내자 팬더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귀엽긴 하지만 쓸모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만든 물건들은 실용적이진 않지만 감성을 효과적으로 어루만져 줍니다."

 

◇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그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자. 종이를 뜯으면 하루씩 날짜가 넘어가는 전자 달력. 메시지가 도착하면 색을 변화시켜 알려 주는 램프. 음악을 켜면 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소리를 내는 스피커 등이다. 아이디어가 넘치긴 하나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기존 물건들에 비해 상당히 불편하다. 사람들은 예쁘지만 실용성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런 디자인 소품들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전자 달력이지만 매일 종이를 뜯어야 하고 알람은 소리가 없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칠 수도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피커는 오히려 전력 낭비다. 실용적인 면에서 그의 작품은 모두 낙제점이지만 영진 씨는 자신의 작품들이 사람들이 가진 민감한 감성을 어루만져 준다고 설명한다.

"효율성만 강조한 기성 제품들에선 아무래도 정서적인 만족을 찾아보기 힘들죠. 저는 사람들이 가진 감성을 어떻게 만져야 할지에 집중해요. 예를 들어 전자 달력에 종이를 붙인 이유는 정신없이 보낸 하루를 달력의 종이를 뜯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레 정리하게 만드는 겁니다."


◇ 세상 물정 모르는 디자이너?…IT제품도 척척

물론 영진 씨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감성적인 디자인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본업인 제품 디자인에선 철저히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진 씨가 감성과 이성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던 이유는 쓸모없어 보이는 작품들을 만들고 부터다. 디자인을 하며 IT기술을 활용한 메이킹을 하다 보니 디자이너의 따뜻한 감성과 공학도의 차가운 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됐다. 여기에 제품 디자인부터 회로 설계, 시제품 생산에 이르는 제조의 전 과정을 알게 된 건 덤이다. 이렇다 보니 다른 디자이너들이 놓칠 수 있는 의뢰인과 개발자, 공장 사이의 관계까지도 꼼꼼하게 챙긴다. IT업계에서 계속해서 의뢰가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이킹은 디자이너에게 현실감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꾸준히 메이킹을 해 오다 보니 개발자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도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감이 확실하게 잡힌다는 장점이 있죠."

재밌는 점은 영진 씨가 디자인과 IT 어느 하나 전공으로 배운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한 그는 어느 날 공부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지루하다고 느껴졌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디자인을 복수전공하면서 3D프린터와 아두이노(센서와 부품을 활용한 메이킹 도구)까지 접했다.

"생소한 걸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처음엔 디자인한 제품을 출력해보는 게 재밌었는데 여기에 전자회로를 입혀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하나씩 기술을 발전시키다 보니 나중엔 무엇인가 만들기 전에 기술을 먼저 떠올리고 이걸 잘 살리려면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메이킹

디자인 시안을 의뢰한 업체로 넘길 때마다 항상 아쉬움을 느꼈다는 영진 씨는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메이커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상용화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빛으로 알림을 주는 램프와 레코드 판처럼 돌아가며 음악을 들려주는 스피커가 그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첫 제품이다. 사실 몇 번의 상용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인 디자인 회사를 3년 간 운영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며 배운 경험치가 그의 든든한 밑천이다.

"상용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몇 가지 벽들이 있어요. 그런데 혼자 일을 하면서 공장과 직접 일을 해보기도 하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보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연한 계기로 프로 디자이너이자 메이커가 된 영진 씨. 그는 자신이 지금의 삶을 살게 된 이유를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누군가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메이킹이 쓸데없어 보이나요? 그래도 이런 물건 하나쯤 있으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한국경제TV 성장기업부 유오성 기자
osyou@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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