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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칼럼/이성경의 '올바른부자'

[올부이야기] 종이팩 화장품에 담긴 비밀…정마리아 톤28 대표

by 한국경제TV 2020. 7. 24.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화려한 화장품, 병 속에 든 내용물의 원가는 얼마 일까? 토너부터 크림까지 7단계에 이르는 기초 화장품, 너무 과한 것 아닐까? 화장품 밖에 모르는 젊은 개발자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화장품의 비밀을 깨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 바른 먹거리 다음은 바른 화장품


정마리아 대표는 생명과학과 화장품학을 전공한 화장품 소재 개발자 이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먹거리 였다.


"그 전에는 아무렇게나 먹고 관심도 없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먹거리에 가장 먼저 변화가 왔어요. 먹거리부터 바꾸고 그 다음에는 생활제품에 변화가 왔어요."


바른 먹거리 문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무농약·유기농 재료에 집 밥 열풍, 신선한 식재료를 아침 마다 배송하는 서비스도 생겼다. 정 대표는 음식 처럼 신선한 화장품도 주기적으로 받아 보면 어떨까 상상했다.


"화장품도 신선하게 구독하면 어떨까? 그런 막연한 상상을 했어요. 30대 후반부터 저의 내면에 창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겨 났어요."


화장품 시장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정 대표는 창업에 나서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런데 그 동안 규제에 묶여있던 맞춤형 화장품의 제조판매가 가능해 졌다. 정부는 지난해 3월 맞춤화장품 시범사업과 함께 화장품법 개정에 나섰다. 


"인생의 흐름과 제도적 흐름, 그리고 시대적 흐름이 맞았던 시기인 것 같아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정 대표는 다니던 화장품 소재개발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8월 톤28을 창업했다. 28은 화장품 배송 주기인 4주 28일을 뜻 한다.

 


◇ 용기 값이 90%…7단계 기초 화장


정 대표는 화장품 용기부터 바꿨다. 치열한 경쟁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시작된 화장품 용기 전쟁은 급기야 원가의 90%를 병 값이 차지하는 왜곡현상을 낳았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면 용기 가격을 떨어뜨려야 했다. 정 대표는 음식을 담는 종이 패키지에 주목했다.


"신선한 먹거리를 담는 포장재를 보면서 종이 패키지에 주목했어요. 주부이기도 한 제가 보기에 배달 서비스의 경우 버려야 할 포장재가 너무 많았어요. 종이로 만들면 가격도 낮추고 부피도 줄고 재활용도 가능하겠다 싶었지요."


안팎의 반대가 심했다. 화려한 용기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과연 종이팩 화장품을 좋아 할까. 정 대표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단계 부터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밀고 나갔다.


"종이패키지를 개발하면서 세 번의 고비가 있었어요. 종이 용기에 대한 안팎의 의구심이 워낙 컸고, 원하는 종이 소재를 만드는 곳도 없었어요. 어렵게 개발한 뒤에는 개발회사에서 특허를 선 출원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액체를 담아도 안전한 종이 소재를 개발해 특허 출원 했다. 용기 가격이 떨어진 만큼 제품 자체의 품질을 끌어 올렸다. 이제 내용물과 패키지 비용이 9대 1로 정상화 됐다.


그 다음은 7단계나 되는 기초화장품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여성들은 토너, 스킨부터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데이크림, 나이트크림까지 7가지 제품을 반복적으로 불필요하게 쓰고 있어요. 또 여름에 산 제품을 겨울에 쓸 수 없어요. 유수분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까요."


같은 성분의 7가지 제품을 덧바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성분을 제 때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 대표는 7단계를 한 단계로 줄이고, 계절변화에 따라 성분을 달리해 28일 주기로 배송하기로 했다.

 

◇ "새마을운동 하나요?"


맞춤형 화장품의 가장 큰 관문은 '소비자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있다. 정 대표는 직원들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 피부 상태를 측정한 뒤 화장품을 제조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한다. 정직 하지만 고비용 구조에 지역적 제약까지 감수해야 한다.


"화장품 업계의 반응은 '방향은 좋은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현실성 없다' 였어요. 부정적인 피드백도 넘쳤고요. 심지어 '새마을운동 하냐'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법인설립 3개월 째인 지난해 10월 조심스럽게 와디즈를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해 봤다. 목표 금액도 소박하게 300만원으로 설정했다. 결과는 699% 달성이었다. 화장품 업계는 비웃었지만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고객들에게 처음으로 우리 제품을 선보였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이 '신박하다(매우 참신하다는 의미의 신조어)'라는 평가를 많이 해 주셨어요. 그제서야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특별한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첫 고객들이 다시 오고 입 소문이 퍼지면서 제품 출시 1년 만에 1만명 가까운 고객이 톤28을 찾았다. 재구매율은 30%. 일반 화장품 재구매율 2~3%의 10배 가량 된다. 지난달 국내 최대 화장품회사인 아모레퍼시픽으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에 한정된 서비스는 내년 상반기 중에 부산과 대전, 대구, 광주 등 5대 지역으로 확대된다. 사실상 창업 2년차인 내년 예상 매출은 약 40억원 이다.

 


◇ 빅데이터 기반 화장품 테크(Tech) 기업 


톤28의 직원 수는 26명, 모두 정규직이다. 설립한지 1년 밖에 안 된 스타트업으로선 만만치 않은 규모이다. 고객을 직접 찾아가 피부 상태를 체크하다 보니 사업이 확장 될수록 직원 수도 늘어나는 구조이다.


"돈을 많이 벌려면 지금의 100% 맞춤형, 1대 1 대면구조는 너무 무거워요.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피부측정 받은 분들이 연내 1만명을 돌파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에 들어가요."


1만명의 피부 빅데이터 분석이 끝나면 피부 유형별로 성분을 매칭하는 세미-커스텀(Semi-Custom) 화장품을 내년 중 출시할 계획이다. 1대 1 맞춤 보다 다소 완화된 형태이다. 봄의 미세먼지, 여름의 자외선, 가을과 겨울의 건조함 등 계절별 문제점을 해결하는 기후 알고리즘도 특허 출원했다. 정 대표는 경쟁과 욕망이 빚어낸 화장품 산업의 거품을 기술로 걷어내는 화장품 테크 기업을 꿈 꾸고 있다.


"바꾸고 싶은 욕구가 강해요. '화장품을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쓸 필요가 없다. 정확한 측정을 통해 균형 있게 쓰자'는 것입니다. 과장된 것이 바로 잡히고, 화장품을 먹거리 처럼 과학적으로 신선하게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성경 기자  sklee@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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