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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메이커스] 힙스터들이 반한 '피규어 아티스트'

by 한국경제TV 2020. 7. 24.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나이키 농구화를 실제 크기의 1/10로 줄여놓았다. 펑퍼짐한 후드 티와 반쯤 내린 청바지도 크기만 작을 뿐 작은 단추 하나까지 똑같이 재현해 냈다. 덕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피규어로 개성 강한 ‘힙스터’들을 사로잡은 남자가 있다. 쿨레인 스튜디오의 이찬우(46) 작가를 만났다.  

 

▲ 그림 못 그리는 '애니메이터'

원래는 화학을 전공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고 안동에서 대학을 다녔다. 큰 불만은 없었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상 각지의 다양한 소식을 접하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TV속 세상이 전부였다.
 
25년 전 이 작가에겐 애니메이션이 그랬다. 당시 애니메이션이란 그저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건 대학교 축제에서였다.
 
"서울에서 온 학생들이 아키라(일본 애니메이션)를 틀어줬는데 기존에 보던 애니메이션이랑 완전히 다른 거예요. 너무 재밌는 걸 보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잖아요. 2시간짜리 영화가 10분도 안 지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처음으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다. 그 날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하지만 어딜가서 배워야 할 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애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이 황금산업이 될 거라며 지원해주던 시기였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 속 간극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
 
"신림동에 있는 애니메이션 외주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아키라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영화나 게임 예고편을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심지어 전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 제 입지는 더 좁을 수밖에 없었죠."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히 보였지만 그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쓰임새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머릿속 그림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시대가 열린 셈이었다.
 
"업계에서 살아남고 싶었어요. 디지털 제작부서로 옮겨와 일을 배우는데 머릿속 생각을 바로 3D 그래픽으로는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 '힙'한 피규어 만드는 이유

2D와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 가며 나름대로 전문성을 키웠지만 그의 가슴 한쪽엔 풀리지 않는 갈증이 남았다. 자신의 이름을 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어 업계에 뛰어든 만큼 내 작품에 대한 열망이 컸다. 피규어는 이 작가의 창작욕을 해소하는 창구였다.
 
"처음엔 취미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국내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책과 동영상을 보면서 독학했죠. 3년 동안 100개가 넘는 캐릭터를 습작하면서 만드는 과정을 손에 익혔습니다."

 

이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하나 둘 주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국내에도 수준급의 피규어 제작자가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2007년 나이키 코리아에서 기념 전시에 쓸 신발 피규어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신발 100켤레와 옷 100여벌을 만들어 전시하면서 본격적인 피규어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올해로 마흔 여섯. 아재(아저씨의 줄임말)로 불리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유행에 민감하다. 농구화, 스케이트보드, 비보이 등 자신보다 20살은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문화와 소통한다. 피규어 구매자들의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다.
 
"스트릿 문화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비보이를 작업할 땐 직접 춤을 추진 못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춤을 추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좀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죠."

 

▲ NBA가 반한 아재, 그의 꿈은 'ing'

처음부터 큰 돈을 벌 수 있던 건 아니다. 생활이 어려워 몇 년 동안은 기존에 하던 애니메이터 일을 병행했다. 다만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계속해 나갔던 게 다양한 업체에서 제안이 들어오게 된 원동력이 됐다.
 
"농구하는 원숭이 캐릭터를 만들어 꾸준히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NBA에서 그걸 보고 선수들을 캐릭터화 시켜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피규어를 소비하는 시장은 크지 않아요. 유명하다고 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에요. 다만 하나를 만들면 꼬리를 물 듯 다음 작업이 들어오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없죠."
 
대한민국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어릴 적 그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직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피규어 아티스트라고 특정지어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 디자인과 제작, 그리고 전체적인 디렉팅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더라도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어요. 저는 피규어를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작업의 기초를 다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다른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어릴 적 제 꿈을 조금씩 현실화 시켜나고 있습니다."
   
《'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경제TV 성장기업부 유오성 기자
osyou@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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